문방구

조르지오 2018. 1. 21. 07:27


 

해지는 하늘에 물이 들면. 

4층 자취방 창으로 고개를 내밀어 

저어멀리 지나가는 친구가 없나 두리번 거렸다. 

할 일이 없던 대학시절의 저녁에는 술을 마셔야만 했다.   

그게 다 하늘 탓이라 했는 데. 과학적으로 일리가 있다는데. 

알랭드보통 처럼 설명할 재간이 없다. 



# 서른 여섯의 1월

나를 이루는 00%의 물처럼 

나를 이루는 대다수의 술자리에서 쏟아지는 지식이 이렇게 물 같다. 


무릎팍도사를 보며 무릎을 치고 있던 나와 아빠에게 엄마는

"남의 인생 봐서 뭐해!" 하고 소리를 지르셨다. 



# 술 유전자


술 한모금 입에도 못 대는 엄마는 아들.아들.아들.딸 중의 막내 딸이였고. 

술 한잔 마시면 얼굴이 벌게지는 아빠는 아들.딸.아들 중의 첫째 아들이였다.


제사는 1년에 10번 정도 지냈다 

"다녀왔습니다!" 하고 가방을 던지면 할머니는 여다지 나무 문을 빼꼼열고. "옴마니반메옴"하고 인사를 받아주셨고

뒷채로 달려가면 엄마는 피아노를 가르친다. 옆집 할머니가 갓난아기였던 교덕이를 보살펴 주셨다.  

아빠는 당시 수업시간에 울리는 학생 삐삐를 던져버렸다는 혈기가 지나친 선생님이었고. 

술을 잘 마시던 막내 삼촌은 목소리가 컸는데. 잘 나가는 회사를 그만두고 했던 위성TV 사업이 망했고

두번째 자동차 악세사리 사업을 시작하는 때 였는데. 아빠한테 엄마가 화를 자주 낸 걸 보면 뭔가가 있었다. 

   

그 때는 엄마는 영화도 안보고. 낭만이나 야망이 없어. 여자는 나이가 들면 소녀를 잃어버린다더니 하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2018년의내 나이 서른 여섯에서 마흔 넷 까지의 정도의 나이였구나. 딸은 애를 낳아야 엄마를 안다는 데.  

글을 쓰면 엄마를 더더더 잘 이해할 수 있구나. 


베로니카랑 삼겹살 이랑 맥주 한잔하면서 이 이야기를 안주 삼아야지.  




# 술 숙제 


목요일에는 5년 만에 현주차장님을 만났다. 과거의 현주 차장님은 목요일에 현주 시디님이 되어 있었고. 월요일에는 현주 선생님이 될 것이다. 

[술에 대하여 써와] 10년 만에 글쓰기 숙제를 받고. 술을 한잔 마시러 갔다. 




# 목요일 사건 발단  


1차에서 술을 마신 이유는 압구정의 묵전에서 굴. 보쌈을 시켰는데. 막걸리 한잔은 뭐랄까 공식이였다. 

2차에서 술을 마신 이유는 바를 하는 진우가 라이언이라는 포메라이언을 분양을 받았는데 "키울래요?" 하면서 일단 와서 얘기를 하재서 갔더니.

조소과를 나온 목요일의 언니가 아이코스를 선물해 주신 덕에 신이 난 나는. 화이트 와인 한 잔만 마신다더니. 한 병을 마셨다.  

신을 받았다는 일본 뮤지컬 에이전시의 범이와 수다를 떨던 덕에 발레타인 한잔을 마셨다. 이제 목언니와 범이는 떠났고. 

바에 있던 성형에 4천만원을 썼다는 패션하는 순돌이랑. 대학은 안갔고 대신 외국어를 열심히 했다며 가이드를 해서 돈을 벌겠다는 

나이보다 나보다 어른스러운 에스지원너비에게 데낄라를 쏘고 있었다. 새벽 4시다. 

모두를 보내고 호피무늬 자켓을 입은 진우랑 보광동 순대국밥을 먹고 헤어졌다. 




# 술난의 시작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재난의 숙취가 하울*의 검은 기운 처럼 나를 잡아 삼켰다.  

오한에 소화불량. 이게 정녕 숙취인가요? 예전엔 안 그랬는데. 왜 이러지!! 

약국에 2틀 연속 가서 심각하게 질문했다.  숙취인가? 감기인가? 체한 것인가?


[나는 드디어 술을 아주 그냥 막 마실 수 없는 간이 되었구나.] 



# 술노래 


토이의 애주가라는 노래를 자주 불렀다. 바비킴의 한잔 더는 더 자주 불렀다. 


술이란 무엇일까? 어젯밤에 그녀에게 사랑 고백 하던 용기가 어디서 생겼을까? 정말! 

술이란 마법같지. 한잔 더! 


술이 마술이지. 암 그렇고 말고. 마술사는 저 해 지는 하늘 이고! 친구 때문이고! 사랑 때문이고! 꿈 때문이고! 삼겹살 때문이고! 시 때문이고! 재즈 때문이야! 

그 덕분에 과연 진정한 사랑과 친구와 낭만과 창작과 꿈이 생겼는가? 무엇을 손해봤는가!? 는 따져서 뭐해~ 후회해서 뭐해!

신났다. 신나게 마시고 놀았고. 뛰어 다녔다. 이제 못 마시는 간이 되었으니 못 마실 뿐 술 못 마셔서 못 마시지. 안 마실 이유 없지 않소? 


우리의 알딸딸한 인생을 위하여! 술 취한거야? 글에 취한거야? 




# 에필로그 


저 사진은 해가 뜨는 사진입니다. 

해 뜰때까지 마시는 술은 정말 좋지요. 사람이 좋아서 마시는 술이니까요. 젊음이 마시는 술이니까요. 

술 너 참 좋구나. 이따 또 마셔야지. 




2018.01.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