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한테 반했다.







베로니카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레몬소주를 팔던 베로니카의 하숙방 가는 길의
2층 술집에서
골뱅이를 싸들고 집으로 놀러가던 그때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고양이만 나타나면 꼭 야옹거린다.

'나비야' 도 아니고
'야옹' 거린다.

삼겹살은 베로니카랑 먹어야 제맛이랬다.

4시에 만나자고 했지만
난 4시 30분쯤 도착했고
정연이는 5시 30분 쯤 준비를 마쳤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바쁠 것도 없었고, 조급할 이유 하나 없는 그리 좋은 일요일이기에
아는 사람들은 알다 시피, 난 일요일에도 빨리 걷기에 바빴던
조급쟁이였다.

참 신기한 것이, 절대 못 변할 거 같던 그 성격이
참 느리게도 참 다르게도 변했다.

아직 못하는 게 있다면......
건방지다
떠오르지 않는다.

'교진아, 저것 봐.'

한창 구경을 했다.
대단한 풍경이다.

무섭다.
정말이지 가까이 다가갔을 때는 좀 많이 무서웠다.

아. 저 녀석 멋있다.
난 저런 사람이 좋더라.

물론, 마지막 사진은 녀석이
그저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기도 하고
벽위로 올라간 친구 녀석을 보는 거기도 하고
정말로 하늘 한 번 지긋이 바라보는 걸 수도 있겠지만

난 내가 호들갑쟁이라
저런 지긋함에 끌리는 편이다.

한 아주머니가 고양이들 소굴 골목으로 들어갔다
나는 호기심은 가졌지만 따라가진 않았다
그런데 베로니카가 평소와는 좀 다르게

베로니카가 직접 따라가 살펴본 건지 예전에 봤던 건지
'밥 주는 아주머니.'
보고 얘기를 해 준 건지, 아닌 건지 가물한데

만약, 정연이가 자기 동네의 그 녀석들과 아주머니를
익숙히 알고 있던 거라면,

녀석이 나에게 보여준 오랜 세월 속의, 그 많은 세상의 것들이
그렇게 자연히 내가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보여준

가슴이 먹먹해질만큼 고마운 것이렸다.
이런게 멋있는 거겠지.

나는 은근히 생색을 낸다.
칭찬받고 싶어하고,
주절주절 하나하나 설명해 댄다.

대부분의 이들이 하품을 하니까
그만두자고 참아내고 그랬는데,
사실 나는 그런거 하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

그래도 요즘 좋은 건, 그런 걸 정말로 재미있어 하고 들어주는
사람들이 점점 더 생겨난다는 거다.

나는 나쯔메소세끼같은 서술을 좋아한다.
나도 '그 후'를 읽으면서, 재미는 없더라.
그냥 나는 그런게 좋더라. 이런 것도 폭력이겠지.

베로니카는 그런 내 얼토당토, 횡설수설하던
그때는 발음도 너무 좋지 않아.
무슨 말인지 전혀 못 알아 듣기 일 쑤 인 얘기를

매번 하는 얘기지만,
들어줬다.

아직도 선명한 나만의 기억은
녀석이 지긋이 내 얘기를 바라봐 주면
나는 유일한 친구를 만난 양 신이나서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사실, 그걸 가만이 떨어져 나가서 바라보면
자리에 가만히 앉은 녀석옆에
멀대같은 내가 온갖 손 발은 다 써가며, 큰 소리를 해 나가는 것이
그냥 무언의 퍼포면서 공연 같은 것이다.

점이 있던 누구는 내가 얘기하는 맛이나도록 호응을 잘 해주던 멋진 친구였지만 사실 녀석은 내 얘기가 재미가 없어서, 내가 미안했고
손가락 얇은 누구는 내가 하는 얘기에 마음을 다해 들어주었지만, 언어를 통한 사유의 단계가 있다면, 그 단계로 들어가기에 차이가 있고 방어하기 일쑤라, 내가 화가났고
턱을 잘 괴는 누구는 내가 하는 얘기가 내가 가진 본연의 특징임을 이해하고 들어주었지만, 본인 자신이 자신에게 화가 나 있어서, 내가 민망했고
쉴 틈 없이 얘기하는 누구는 원래 내 얘기는 안 듣고, 어느 정도 뻔한 얘기로 넘겨내기가 정도이니, 그냥 웃고 말았다

그래도, 윤호랑 퍼즈에서 이야기를 했을때와
동준오라버니아 소아언니와 천상에서 만났을 때 
내가 말하고 듣는 것에 쾌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긴장하고 있으며, 재미도 있고, 편안함도 있고, 단계도 통하고, 그런 것이 있었다.
이런 건 그러나 하나의 시선일 뿐 이다.

대화는 어우만짐이라고 표현 것이 있었다.
에릭번의 교류이론에서 관계 정도에 따라서, 사람과 사람이 교류를 하는 것에는 기대되는 어루만짐의 단계가 있다고 정리했다.
예를 들어, 1주일동안 휴가를 다녀 온 내가, 자주는 아니더라도 3일에 한 번쯤 복도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부사장님에게 인사를 올렸을 때는 인사를 받아 주는 정도를
해도 감정이 상하지는 않지만, 옆자리에 앉은 동료가 ' 어 잘 다녀왔어? 재미있었어?' 라는 인사는 전혀 없어. 평소처럼 '안녕'정도로 끝을 낸다거나 하면 서운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군대에서 휴가 나온 친구의 가족들이 이사를 간 일 같은 것 말이다.

이런저런 얘기를 이렇게 주절주절 잔뜩 쓰려던건 아니였는 데 라고는 말하지만, 사실 그냥 흐르는 것을 목적화 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러면서, 이런 것에 모든 것의 연습이 된다는 얘기를 덧붙여 버리면, 그야말로 재미가 싹 달아나버린다.
노는 건 그냥 노는 거지, 목적따윈 없다.

이런 부분에서 '나는 인어공주' 라는 영화의 메세지 덕에 좀 속이 시원해진 맛도 있었다.

아무튼.

우리는 모두 완벽한 만남을 갈망하면서
실험이나 관찰 혹은 변화 없이
바른 것이거나 혹은 바르지 않는 그 행위의 변화에 대한 노력없이
마냥 술만 쳐 마시며,
세상 다 그렇지 하고 말고 있다.

누구와 누가 갈등이 있다. 직장 내에서는 뭐 일적인 관계니까 괜찮아 하면서 적당히 연기를 하고 마는 데, 앞으로 삶의 반 이상을 그 사람과 보내게 될 예정이라면...
아버지에게는 고정수라는 선배가 있다. 엄마에게는 송자아줌마와 연희할머니 은희선생님이 있고, 여진이에게는 소희랑, 이든랑, 이외수 아저씨 문하생이랑, 그림그리는
인도에 다녀온 (녀석들 이름을 까먹었네) 예쁜이 들이 있다. 교덕이한테는 소녀시대가 있다.

저 고양이들의 소굴은 충정로에 있다. 2호선 충정로 역에서 - 동아일보로 넘어가는 어딘가 골목길이다.


[베로니카는 고양이를 좋아해]
[누가 베로니카를 고양이 앞으로 옮겼는가?]
[베로니카의 영혼의 고양이 수프]
[베로니카 고양이 사기로 결심하다]
[베로니카와 고양이 사이]
[베로니카는 왜 고양이를 좋아하는가?]
[베로니카의 고양이]
[지금, 고양이를 잡아라]
[고양이]

아, 요즘은 번역서에 대해 좀 신경이 거슬꼬슬 거리는 느낌이 온단 말이지.
그렇다고 안 읽을 수도 없단 말이지.

이럴 때, 제발 좀 '그런 김에 공부해서 원어로 읽어' 라는 식의 대답은 우리 노력해서 피해봅시다.
인기 있을 당신을 위한 조르지오의 것넘는 소리.

이색을 찾아 떠나기나 하자.

오랫동안 찍은 사진이나 올릴려 했더니, 이거 너무 난잡하다.

2009.  




 
충정로 고양이 편 :: 2009. 6. 22.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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